디스토피아적 재난 영화라고 하면 화려한 특수효과와 스펙터클한 장면을 기대하는데, 과연 이 영화는 그런 기대를 채워줄까요?
저는 다른 의미로 전혀 다른 영화를 만났습니다. 2026년 3월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콘크리트 마켓>은 '콘크리트 유니버스'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으로, 재난 이후의 세계를 배경으로 한 생존 드라마입니다. 이 영화의 가장 독특한 설정은 바로 통조림이 화폐가 된 세상이라는 점입니다. 제가 직접 봤을 때 액션보다는 인간의 본성과 경제 시스템에 집중한 작품이었습니다.

통조림이 화폐가 된 세상, 황궁 마켓의 생존 경제
일반적으로 포스트 아포칼립스 재난 영화는 폐허가 된 도시와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등장인물들의 처절한 액션을 보여준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 영화는 완전히 다른 접근을 시도합니다.
영화는 대지진으로 서울이 무너진 후 유일하게 살아남은 황궁 아파트가 배경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이 아파트가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라 거대한 시장 시스템으로 변모했다는 점입니다.
영화 속 황궁 마켓에서는 통조림이 법정화폐(Legal Tender)의 역할을 합니다. 여기서 법정화폐란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거래 수단을 의미하는데, 이 세계에서는 정부가 무너진 대신 통조림이 그 자리를 대신한 것입니다. 1층부터 9층까지 각기 다른 물품을 취급하는 상점이 들어서 있고, 식량·약품·연료 등 모든 것이 통조림으로 거래됩니다.
이 마켓의 정점에는 전직 제약회사 영업사원 출신인 박상용(정만식 분)이 군림합니다. 그는 재난 초기에 약품과 자원을 선점해 절대 권력을 쥔 인물입니다. 영화는 이러한 자원 독점을 통한 계급 구조의 형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의 핵심 갈등은 천재 소녀 최희로(이재인 분)가 마켓의 실무를 담당하는 김태진(홍경 분)에게 접근하면서 시작됩니다. 희로는 친구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밝히고 동생을 지키기 위해 박상용의 독재 체제를 뒤흔들 계획을 세웁니다. 제가 이 부분을 보면서 느낀 건, 액션이 아닌 심리전과 두뇌 싸움이 영화의 주축을 이룬다는 점입니다.
주요 출연진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이재인: 마켓에 잠입한 천재 소녀 최희로 역
- 홍경: 마켓의 관리자이자 박상용의 왼팔 김태진 역
- 정만식: 마켓의 절대 권력자 박상용 역
- 유수빈: 태진의 라이벌 박철민 역
- 김국희: 8층 거주자 미선 역
드라마를 영화로 편집한 구조적 한계
일반적으로 포스트 아포칼립스(Post-Apocalypse) 장르는 재난 이후의 암울한 세계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이 영화를 봤을 때는 다소 밋밋하게 느껴졌습니다. 여기서 포스트 아포칼립스란 종말 이후의 세계를 다루는 장르를 의미하는데, 보통 황폐화된 도시와 생존을 위한 격렬한 액션이 특징입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구조적 한계입니다. 원래 웨이브(Wavve) 오리지널 시리즈로 제작된 7부작을 영화 버전으로 재편집하면서 스토리 전개가 급작스럽게 느껴지는 구간이 많았습니다. 특히 세계관 설정을 지나치게 자세히 설명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몰입을 방해했습니다.
영화 중간중간 등장하는 소제목 키워드를 화면 전체에 배치하는 연출도 개인적으로는 거슬렸습니다. 이는 드라마 형식에서는 자연스러울 수 있지만, 영화에서는 흐름을 끊는 요소로 작용했습니다. 솔직히 전작인 <콘크리트 유토피아>에 비해 확실히 재미가 떨어진다는 게 제 솔직한 평가입니다.
액션이나 스펙터클한 장면이 거의 전무하다는 점도 아쉬웠습니다. 재난 영화의 서스펜스(Suspense)를 기대하는 관객에게는 실망스러울 수 있습니다. 서스펜스란 긴장감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며 관객의 몰입을 이끄는 영화적 장치를 의미하는데, 이 영화는 그런 긴장감이 많이 부족했습니다.
다만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재난물이 아닌 생존 경제의 시점으로 풀어낸 시도는 신선했습니다. 통조림 화폐 시스템이라는 독특한 설정과 자원을 둘러싼 인간 군상의 모습은 나름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특히 정만식의 압도적인 빌런 연기는 극의 무게감을 더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 부분입니다.
여주인공의 걸크러쉬 스타일이 다소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었고, 전체적으로 OTT에서 새로 나온 작품이라 한 번쯤 볼 만한 영화라는 게 제 최종 결론입니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대홍수>와 비슷한 느낌을 받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결국 <콘크리트 마켓>은 재난 그 자체보다는 재난 이후의 사회 구조와 경제 시스템에 집중한 작품입니다. 화려한 액션을 기대하기보다는 인간 본성에 대한 우화로 접근하는 게 더 적절해 보입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일반적인 재난물과는 다른 시각을 경험해 볼 수 있습니다. 다만 극장에서 봤다면 조금 아쉬웠을 영화라는 점은 분명합니다.